언성히어로(unsung hero)
보이지 않는 영웅이라는 뜻으로
남들 눈에 띄진 않지만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오늘의 주인공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인간'
숫자로 이야기하자면
'7,13,21,33'이 가장 어울리는 남자.
두 개의 심장과 세 개의 폐를 가진 남자.
바로 박지성이다.
박지성의 간략한 수식어
* 최초의 한국 프리미어리거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아시아최초)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아시아최초)
*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득점기록(아시아최초)
■ 처음으로 축구와 사랑에 빠지다.
유독 수줍음이 많던 덩치 작은 아이.
아버지와 함께 야구, 축구 경기를 많이 보러 다녔었는데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3학년 때 야구부를 찾아갔는데, 4학년 때 오라는 말을 전해 듣고 발길을 집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 해 여름, 집이 이사를 가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축구부를 창단하게 되어서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축구부 생활을 지속하다가 귀가가 늦어지고
학업에 지장이 가는 날이 많아지자
아버지는 박지성의 축구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박지성은 단식투쟁을 시작해서
단, 중간에 그만두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부모님께 축구부 승낙을 받게 되었다.
열한 살의 박지성은 스스로 택한 꿈을
무척이나 엄중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지성은 다른 친구들에게 비해서
왜소한 체격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어릴 때 박지성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축구는 체격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술이 뛰어나면 체격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술 쪽에 집중해 훈련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초등학교 선수시절 차범근 축구상을 받는다.
박지성은
지금까지도 차범근 축구상에 대해서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자신은 장려상을 받았다고
해명을 하곤 한다.
박지성은 중·고등학생 때 눈에 띄는 이력은 없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 또한 없다.
아주 그냥 평범한 축구선수였다.
대학 진학조차 쉽지 않았던 무명시절,
대학 진학 후 허정무 감독님에 눈에 띄면서
시드니 올림픽 대회 대표팀에 발탁이 된다.
■ 무명선수의 반격
당시 명지대학교 감독 김희태 감독과
올림픽 대표 감독인 허정무 감독은 절친한 사이다.
동계훈련 기간 동안 올림픽 대표와 명지대학교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많이 할 기회가 찾아온다.
묵묵히 열심히 훈련만 하던 박지성.
어느 날 김희태 감독은 박지성을 왼쪽 윙백으로 출전해
올림픽 대표팀을 상대로 골을 넣게 된다.
윙백은 수비수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올림픽 대표선수 3~4명을 제치고 골을 넣으면서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게 된다.
박지성은
그날 골을 넣을 당시,
자신의 드리블을 하고
골을 넣기까지!
올림픽 대표선수들이
모두 비켜주는 것 같았다
라는 말을 남긴다.
박지성은 U-19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된 줄 알았으나,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꾸준하게 발탁이 되어
최종명단에 승선하게 된다.
이렇게 대표팀의 막내로 시작한 박지성은
태극마크를 달고 세 번의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고, A매치 100경기에서
13골의 득점을 올리며, 한국축구의
영원한 캡틴으로 마음속에 각인이 된다.
■ 첫 해외진출, 교토의 영웅!
박지성은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다니며
외국리그에 진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최종목표는 유럽으로 진출의 목표로 잡는다.
그러던 중 일본 J리그 두 팀에서 이적제안이 온다.
1팀은 J리그 명문 구단인 시미즈 에스펄스
나머지 1팀은 J리그 최하위 팀 교토퍼플상가이다.
시미즈 에스펄스는 C계약인 조건부 계약이었고
교토퍼플상가는 정식계약이었다.
두 팀 중 박지성의 선택은
경기 출전을 많이 할 수 있고, 당장 주전으로 가능한
교토퍼플상가로 이적하게 된다.
팀은 이적 후 2부 리그로 강등이 되지만
박지성의 최고의 활약으로 다시 1부 리그로 승격된다.
J리그 일본기자들이
구단별로 뽑은
교토퍼플상가의
역대 최고의 선수는
박지성!
1부 리그로 승격한 다음 해 1월 1일,
FA컵 대회인 '일왕배' 결승에서
1골 1 도움이라는 맹활약을 하면서
구단최초 우승컵을 안겨주면서
팬들에게 새해 선물을 안기고 유럽으로 떠난다.
■ 이 글을 마치며
박지성의 유년시절부터 올림픽 대표팀 선발과정까지
첫 프로계약 이야기까지 다뤄보았다.
교토퍼플상가에서는
어딜 가든 응원하겠지만은, 언젠가는 돌아와 달라는 말과
부상으로 영원히 뛸 수 없다 해도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겠다.
라는 일본의 3대 경제인으로 꼽히는
당시의 구단주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은
박지성이 엄청난 업적은 남기면서
그가 2년 동안 J리그에서 보여준 실력도 있지만은
태도 또한 영원한 레전드로 기억할 수 있게 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음 2편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활약과 첫 유럽진출 그리고
세계의 최고의 클럽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의
대단한 업적까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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